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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팔영산 등산후기후기/산행 2014. 2. 13. 18:22
구름도 쉬어가는 팔영산 팔봉
세수대야에 비친 여덟봉우리를 찾아 먼길을 달려온 위왕!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 -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 칠성봉, 적취봉.
옛날 중국의 위왕이 세수를 하다가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에 감탄하여 신하들에게 찾게 하였으나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어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는데, 왕이 몸소 이 산을 찾아와 제를 올리고 팔영산이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가끔 하게되는 여행이 좋긴한데 가장 문제되는게 먹는문제인것 같다.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나 숙박시설이 좋아 자는것은 불편함이 없는데 낮선곳에서 아침일찍 눈을뜨면 아침식사와 산에가져갈 도시락준비가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침식사는 어제 준비해둔 사과 한알, 빵한개, 우유한컵으로 가름하고 점심은 하산후에 할 요량으로 좀 일찍 나섰다.
2014, 2, 9(일요일) 아침 9시 팔영산 산행들머리인 능가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절집 옆으로 난 돌담길을 따라 산행에 들어갔다. 다행스러운건 아침까지만 해도 잔뜩찌푸리고있던 하늘이 열리고 있어 능선에 올라서면 다도해의 조망이 가능하리란 기대를 갖고 산행을 할수 있었다.
▲능가사 사천왕문
능가사의 절집중 대웅전을 제외한 모든건물들이 단청을 하지 않았다
*능가사*
점암면 성기리 팔영산 아래에 위치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 눌지왕(訥祗王) 원년(416)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빙성이 없다.
팔영산 중턱에 보현암(普賢庵)이 언제부터인지 창건되어(아도화상이 포교를 하기 위하여 한 때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이 있음) 뒤에 보현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 보현사가 뒤에 능가사로 되었다고 능가사 사적비(楞伽寺 事蹟碑)에서 밝히고 있으나 지리지류(地理誌類)에서는 서로 다른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능가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임진왜란(정유재란이 옳음) 때에 왜군에 의해 불에 타 버려 폐찰이 되었다고 한다. 인조(仁祖) 22년 황명숭정갑신(皇明崇禎甲申 : 1644) 정현대사(正玄大師)가 하안거(夏安居, 4월 중순에서 7월 중순까지 90일 동안 승려들과 방에 모여 수도함)를 하다가 꿈을 꾸게 되었다. 그것은 한 신승(神僧)이 나타나서 '장부(丈夫)로 태어나 부처가 되기 어려우므로 마땅히 대공덕주(大功德主)가 되어 종풍(宗風)을 홍포(弘布) 하겠다'는 꿈을 꾼 것이다. 이에 정현대사는 광희사(廣熙師)와 함께 산을 살펴보게 되었다. 산의 남쪽에 옛 절터를 발견하여 전각·요사채·불상·탱화·종각·목어각 등 불사를 함으로써 정현이 창건주가 되어 능가사를 시창하였던 것이다. 이는 모두 꿈에서 취한 것이었다. 그 뒤 정현대사가 멸도(滅道 :入寂)하게 되자 그의 제자 민정(敏淨), 의헌(義軒), 상기(尙機) 등이 스승의 유지를 따라 문(門)의 요사채를 단청 불사함으로써 사찰 면모를 일신하였다. 일련의 사찰 당우 불사가 이루어지자 사승(寺僧) 수명(透明)이 능가사의 사적이 없음을 애석하게 여겨 천리를 달려 통정대부홍문관 부제학 (弘文館 副提學) 오수채(吳遂采)에게 청문하여 숙종 16년(1690) 능가사 사적비를 건립하였다. 비음기는 고흥 출신 승려 영해약탄(影海若坦,1668~1754)이 지었다.
능가사의 소속 암자는 서불암(西佛庵), 만경암(萬景庵) 이었다. 서불은 능가사의 별암 가운데 으뜸가는 암자로 옛날에는 서불사의암(西不思議庵)이라 불리다가 서불암 혹은 서암(西庵)으로 불리워졌다. 옛날 보현사의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설암(雪岩)의 제자인 성진(性眞)이 1894년 신기선(申箕善)에게 능가사 서불암 중수기(楞伽寺 西佛庵 重修記)를 청하였다. 만경암은 벽오(碧梧)와 그의 제자 설암·의관(儀觀)·형연(炯然)이 머물렀던 암자이다. 신라 눌지왕 원년 아도화상이 주석했다고 하나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옛날에는 보현암 이었는데 만경암으로 고쳐 불렀다. 이 암자도 벽천사 정현(碧川師 正玄)이 지었는데 인조 22년(1664)에 네 차례나 개수하였다. 철종 8년(1857)에 선사(禪師) 기성당(綺城堂)이 경신하였다. 암자 당우가 1900년(庚子) 봄에 화재를 만났으나 견송(見松), 명학(暝鶴)이 회향(廻向)하였다. 한둘 승려가 발원.모연(發願.募緣)하여 3년이 지난 1902년(壬寅) 겨울에 겨우 원루(院樓) 전방(殿房)을 엮어 한꺼번에 전제(前制)를 열어 광장(廣壯)하였다고 한다. 1918(戊午)에 만경암을 중수하고 그 기념비를 대웅전 옆에 건립했다. 능가사의 승려 익순(益淳)은 범패(梵唄)에 능하였는데 그의 문도가 크게 성하여 널리 퍼져 있었다.
고즈넉하고 옛정취 물씬한 능가사 옆 돌담장길을 돌아들면 팔영산 오토캠핑장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부도군이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상당한 세월을 보낸 흔적을 느낄수있다.
본격적인 산행은 오토캠핑 옆을 돌아 제1봉을 바라보며 작은 물소리를 벗삼아 이어진다.
▲캠핑장
▲흔들바위쉼터
여기서 잠깐 숨을 돌리며 따뜻해져 오는 등을 식히기위해 두꺼운 점퍼를 얇은것으로 갈아 입고 산행을 이어간다.
암릉으로 이어진 정상부와는 달리 부드러운 흙길의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져온다.
▲제1봉(유영봉)
10:30 산행 1시간 30분만에 제1봉에 올라섰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바다가 보이니 섬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다.
▲제2봉(성주봉)
유영봉에서 바라다본 제2봉(성주봉)
▲제3봉에서 제5봉으로 이어진 능선
▲8봉에서 바라본 고흥만
▲팔영산 정상 깃대봉에서 뒤돌아본 팔봉능선
제1봉에서 8봉까지 이어진 암릉은 네발로 기는 짜릿함과 시원한 다도해의조망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육지의 산을 왜 다도해 국립공원에 편입시켰는지는 의아스럽다.
각종 안전시설과 이정표는 잘 되어있었는데 8봉과 깃대봉사이 하산지점이 확연치 않은점을 보안해 주었으면 한다.
▲편백나무숲
특유의 향과 파톤치드를 많이 내뿜어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다는 편백숲이 참 좋았다.
▲다도해국립공원 팔영산지구 관리소
예전엔 팔영산 전라남도립공원이던것을 다도해 국립공원으로 편입시켰다는데 육지의산을 왜그렇게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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