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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국립공원과 고찰 무위사 탐방후기/산행 2014. 1. 22. 18:22
월출산 국립공원
월출산은 “달 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수한 문화자원, 그리고 향토적 정서가 골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주요 탐방로는 천황사터, 또는 바람계곡에서 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로 이어지는 종주능선으로 (약 6시간 소요), 오르막길이 급경사를 이루어 체력소모와 안전사고를 조심해야 하나, 사방이 탁 트여 능선상의 바위경관과 영암 및 강진 벌판의 아름다운 전원경관 조망이 일품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름다리와 구정봉 바위 꼭대기의 아홉 개 물웅덩이는 대부분 탐방객이 꼭 한번 들려가는 명소이다. 깊은 계곡에 동백나무 숲이 어우러진 경포대-바람재 구간은 (약1시간 30분소요, 천황봉 및 구정봉 능선으로 연결) 월출산에서 가장 완만한 탐방코스로, 공원입구의 차밭과 월남사터도 꼭 한번 답사할만한 곳이다. 천황사 입구, 도갑사 뒤편 탐방로 입구, 무위사 뒤편 숲에는 각각 자연관찰로가 조성되어 있어 탐방객 스스로 월출산의 자연생태계와 문화자원을 학습할 수 있으며, 공원관리사무소의 전문직원이 안내하는 해설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다양한 탐방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경관자원 해발고는 809m로 비교적 낮으나 사방에 큰 산이 없는 들판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 거대한 암봉과 장쾌한 암릉을 형성하고, 약 6천만년 전에 형성된 이러한 화강암 바위들이 오랜 세월동안 풍화와 절리작용을 통해 깍여나가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어 그 절경을 흔히 “남도의 금강산”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월출산을 펼쳐 놓은 것이 금강산이다.” 할 만큼 계절별로, 기상상태별로, 보는 위치에 따라서 변화무쌍한 입체적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천황봉을 중심축으로 이러한 남성적 돌출경관이 월출산을 상징하고 있지만, 구정봉에서 남쪽 억새밭으로 향하는 월출산의 절반은 완만한 능선과 섬세한 계곡으로 이루어져 매우 여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래서 월출산은 남성과 여성이, 힘과 기교가, 패기와 노련미가 절반씩 어우러진 ‘조화의 산’이다.
무위사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905년(효공왕 9) 이후 선종인 가지산문(迦智山門)계통의 선각국사(先覺國師) 형미(逈微, 864∼917)가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으로 무위갑사(無爲岬寺)에 머무르면서 절을 중수하고 널리 교화를 펴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 한다. 따라서 무위사는 형미 스님이 주석했던 10세기 초 이전에 무위갑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고려시대인 946년(정종 1)에 형미가 제3창을 하면서 모옥사(茅屋寺)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946년은 이미 형미가 입적한 30년 뒤에 최언위가 지은 <고려국고무위갑사선각대사편광영탑비>가 세워진 해라서 믿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 형미가 모옥9茅屋)이던 무위갑사를 왕건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창하면서 교화를 펼쳤던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무위사는 10세기 초 이전에 창건되었고, 형미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가지산문 소속의 선종 사찰이었음은 분명하다.
절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여러 가지 활동 기록이 보여지는 등 자못 활기를 띠고 있어 주목된다. 나라에서는 1407년(태종 7) 12월에 각처의 명찰로 여러고을의 자복사(資福寺)를 삼게 하였는데, 이 때 무위사는 천태종 17사 중의 하나로 소속되었다. 이것은 무위사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선종 사찰에서 천태종 사찰로 그 성격이 변동되었음을 말하여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같은 사격의 변동은 고려후기의 천태종 백련결사의 활발한 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만덕산 중심의 백련결사(白蓮結社)도 천태종의 법화신앙에 입각한 결사운동으로 무위사의 사찰 성격 변동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믿어진다. 결국 무위사는 천태종 백련결사가 활발했던 고려후기에 이미 천태종 소속의 사찰이 되었다가 조선 초기 사찰통폐합의 2차정리기인 1407년에 천태종 소속의 자복사로 남게 된 듯하다. 이 무렵의 연혁을 보면 1430년(세종 12)에 극락보전이 건립되었는데 지금 극락보전 안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삼존불도 이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1476년(성종 7)에는 극락보전 후불벽이 만들어졌고 후불벽화가 조성되었음이 <무위사극락보전묵서명(無爲寺極樂殿墨書銘)>으로 확인된다. 이 묵서명을 보면 극락보전 건립에 관직을 부여받은 승려들이 참여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는 곧 극락전 건립이 조선 초기에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던 고급 기술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건물임과 함께 국가적인 사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7 <강진현 불우조>에는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이제 중수하고 이로 인해 수륙사(水陸社)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위사가 수륙사로 지정된 것과 극락보전의 건립, 아미타삼존도 · 아미타여래도등의 벽화 조성은 그 조성 시기 및 신앙 배경 등에 있어서 상호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왜냐하면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는 수륙재(水陸齎)를 빈번하게 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륙재는 지상에 떠도는 망령을 부처님에 의하여 환생케 하는 재생 의식으로서 적을 포함한 전사자를 위로하는 불교 의식이다. 죽은 영혼을 달래려는 수륙재는 곧 살아 있는 자들의 애도와 복수심가지 포용하려는 차원에서 거행된 불교 의식인 것이다. 수륙사로 지정된 무위사에 극락보전이 건립되고 아미타불의 벽화가 조성되는 것은 이와 같은 신앙 구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 여겨진다.
한편 <무위사사적>에 따르면 1555년9명종 10년)에 태감(太甘) 스님이 4창하고 무위사로 개칭했다 한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무위사란 절 이름이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1407(태종 7)에 이미 나타나고 있어 <무위사사적>의 이 부분 역시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임잰왜란 · 병자호란 두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절은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아 절의 웅장하고 화려함이 일도(一道)에 으뜸이었다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점차 법당과 요사가 훼손되어져 몇 개의 전각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1678년(숙종 4)에는 극락보전 앞마당에 있는 괘불석주가 제작되었다. 1739년 (영조 15)에 해초(海超) 스님의 공덕으로 전각이 보수되었는데 당시 미타전· 천불전 · 시왕전이 있었다. 당시의 주지는 극잠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절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극락보전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 1956년에 극락보전을 수리 보수하고 1975년 벽화보존각을 세워 그 안에 벽화를 봉안했다. 1975년에는 편광영탑비와 사리탑 등에 대한 정화 불사에 이어 봉향각 · 해탈문 · 명부전 · 천불전을 다시 짓고 1991년에 산신각을 1995년에는 이미 있던 동쪽 요사를 늘려 지었다.월출산&무위사 탐방
고향 해남을 찾을때면 호남의 금강 월출산을 오르곤했다.
천황사를 깃점으로 구름다리, 통천문, 천황봉, 바람재, 구정봉, 도갑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호했기에 이번엔 강진쪽의 금릉 경포대에서 천황봉을 오른후 바람재에서 경포대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2014, 1, 15, 10:30 무위사에 도착하였다. 내 발자욱이 절집의 정적을 깰까봐 비교적 조용하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경내를 한바퀴 돌아 보았다.
월출산을 약간 비켜선듯한 가람터는 잔잔한 경사위에 남향으로 자리하여 년중 해가 잘들고 조망이 좋으며 통풍이 순조로울것 같아보이는 것이 풍수지리하고는 거리가 먼 내가 보아도 너무나 좋은 곳에 자리한것 같다.
11:00 월출산 국립공원 경포탐방지원센타에서 관계자로 부터 오늘의 산행코스에 대한 안내설명을 듣고 천황봉으로 향했다. 경포대-구름다리 갈림길-통천문-천황봉-바람재-경포대로 원점회귀하는데 보편적으로 3시간 30분이 소요예상.
천황봉을 올려다보며 산행을 시작 한다.
안내지도에서 다시한번 오늘의 코스를 확인하고. 룰루 날라 가벼운 걸음으로♩♪♬
긍릉교를 건너고
동백숲을 지나 산행은 이어지느데 봄날같은 날씨에 자켓을 갈아 입었다.
갈수기라 수량은 줄었지만 졸졸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가 좋은 곳에 금릉경포대의 설명이 장황하게 걸렸다.
숲좋고 물좋은 곳이니 야영장도 있는데 인기가 없을듯, 차가 들어올수 없으니 요즘 대세인 오토캠핑장에 밀릴것이 빤하지 않는가?
남도의 산은 한결같이 편백나무등 사철 푸른숲이 많다.
발길에 밟히는 저 뿌리들은 많이 아플것 같다.
산죽 또한 남부지방의 산엔 군락지가 많다.
물맛좋은 샘이다.
목을 추기고 이제부터 경사도가 높은 비탈길을 올라야한다.
참 이곳에서 부산에서 왔다는 노 부부를 만났다. 천황봉에서 구름다리를 경유 천황사로 하산하려했는데 그 쪽이 통제되고 있어 경포대 쪽으로 잘못내려선것이다. 경포탐방지원센타에 문의하면 잘 안내해줄거라 조언해 주었다.
초행인 경우 사전 준비가 없으면 자주 볼수있는 실수다.
12:15 경포대 3거리 능선에 올라섰다
천황봉과 구름다리로 갈리는 곳인데 구름다리쪽은 막아놓았다.
▲구름다리 방면 통제안내문과 바리케이트
▲구름다리
▲사자봉
▲통천문
▲영암읍 전경
▲천황봉 표지석
▲구정봉
▲돼지바위
▲남근석
▲바람재 갈림길
▲기암이나 암반들이 오랜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무너진것들이 흘러내리다 산 사면에 쌓인 형태인데 예추(崖錐)라고 부르며 우리나라 산악에 많이 분포되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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