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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등산(無等山. 1,187m) 산행후기
    후기/산행 2011. 10. 18. 19:16

    『장거리 산행치고는 좀 늦은 시각인 아침 7시20분 광주광역시에 있는 무등산(無等山)을 향해 출발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높은 하늘과 황금색으로 변한 호남벌은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초행이지만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어렵지 않게 무등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원효사지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마치고 숲이좋은 무등산 옛길로 접어든지 두어시간만에 도착한 서석대 전망대, 수직절리의 기암들이 장관을 이루고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광주시가와 나주벌 넘어로 조망되는 영암 월출산의 그림들이 너무나 매혹적이다. 정상 천왕봉은 서석대 표지석 앞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 해야했다. 군사시설 지역으로 출입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제 465호로 지정된 서석대와 입석대의 주상절리는 그규모도 크지만 오각형, 육각의 석주들의 특이한 모양은 무등산에서만 볼수있다고 한다. 입석대를 뒤로한 하산길은 장불재로 이어진 억세군락이 장관을 이루어 그 풍광에 매료된 발길을 자주 멈추게 하였다. 중머리재를 지나 덕산너덜지대에 이르렀을땐 석양이 서쪽 산마루금뒤로 빠져 들기 직전에 이르러 조급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 해야했는데도 원효사에 이르렀을땐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어 경내를 제대로 돌아 보지도 못하고 광천동 현대백화점 뒷골목으로 이동하여 광주의 토속음식인 오리탕으로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다. 뚝베기에 들깨를 갈아만든 육수와 오리고기, 미나리를 넣고 끓이면서 들깨가루를 잔뜩넣은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와 오리고기는 별미중의 별미였다. 잘 빠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온 시각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뜨거운 물에 몸을씻고 잠자리에 들어 기분 좋았던 하루를 되짚어 본다. 빛고을 광주, 그리고 무등산, 상당기간 벼르던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는 흐뭇함에 젖었다 눈을 뜨니 동창이 밝아 있다. 』  

    ▲ 서석대. 뒤에 보이는 암봉이 무등산의 정상 천왕봉(1,187m)이다.

    군사시설 지역으로 출입이 안되는데 오는 29일(토요일) 무등산 옛길걷기 행사때만 특별히 개방한다고 한다.

     

    ▲ 무등산 옛길 표지석(11:55)

    돌계단을 오르면 서석대로 바로 가는 숲길이 시작된다.

     

    ▲ 완만한 경사길을 힘차게 오르고 있는 팀원들

    무등산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산세가 두리뭉실하고 등이 없어 오르기 쉬운 산이다.

     

    제철 유적지 ①②③

    ▲ 임진왜란때 의병대장 김덕령장군이 무기를 만들고 의병들을 조련했던곳이며 바위에 세긴 글은 「만력계사 의병대장 김충장공 주검동」김덕령장군의 활약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긴것이라 하내요.

     

    ▲ 서석대

    무등산 정상 서쪽 1,100고지에 위치항 서석대는 수정병풍처럼 둘러쳐져 상서로운 빛을 머금고 광주의 상징으로 우뚝 서있다. 이는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대(住狀節理臺)로서 자연유산으로 보전가치가 높아 입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 서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주평야

     

    ▲ 서석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광주시

     

    ▲ 서석대에서 바라본 무등산 정상 천왕봉

     「광주광역시 도심의 동쪽을 에워싸고 솟은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으로 1972년 5월 22일 도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해발1,187m의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 일대는 서석대·입석대·규봉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치솟아 장관을 이룬다. 또 마치 옥새같다 하여 이름붙여진 새인봉은 장불재에서 서쪽 능선상에 병풍같은 바위절벽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고장 산악인들의 암벽훈련장으로 유명하다.

    무등산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너덜이라 할 수 있다.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을 연출한다.
    옛 궁궐의 진상품이었던 무등산 수박은 광주의 또 다른 자랑이다. 개량 수박의 출하가 끝난 8월 중순 이후 추석 전후에 출하되고 있다」

     

     ①

     ②

     ▲서석대 주변 경관

     

    ◆ 입석대 ①②③

     

     

     

     

    ◆ 무등산 장불재 일원의 억세 ①②③④

     

    ▲ 장불재 표지석

     

    ▲ 중머리재

     

     

    ▲ ①② 덕산너덜

     

    ▲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의 일몰

     

     ▲ 무등산의 석양

     

    원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지증왕 또는 법흥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과 문무왕대에 원효국사가 이전부터 있던 암자를 개축한 뒤 머무르면서 원효사·원효암·원효당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려 충숙왕 때 화엄종의 한 승려가 이곳에 절을 짓고 원효대사의 이름을 따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609년(광해군 1)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한 석경(釋經)이 건물들을 다시 세우고 천왕문(天王門)을 건립했다. 1636년(인조 14)에는 신원(信元)대사가 중수했고, 이듬해 9월에는 왕견(王堅)대사가 32불(佛)을 조성하여 안치했다. 1685년(숙종 11)에는 신옥(信玉)과 정식(淨式)이 지붕을 고쳤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회운(會雲)이 선방(禪房)을 중창한 후 1802년(순조 2)에 법당을 다시 지었다. 1831년과 1847년(헌종 13)에는 내원(乃圓)과 의관(義寬)이 각각 중수했으며 1927년에는 원담(圓潭)대사가 계속 중수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 6·25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1954~60년에 걸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1980년 5월 대웅전 중창불사(重創佛事) 때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소조불상군·토기·와당·철불두상·고려자기 등 시대가 다른 각종 유물이 140여 점 출토되었다. 또한 절 주변에는 고려시대 부도(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를 비롯하여 조선 중기의 회운당부도와 원효대사부도 등이 있다.

    ▲ 대웅전

     

     

    ▲ 명부전

     

    ▲ 원효사에서 바라본 무등산

     

    ▲ 범종각

     

     ▲ 원효사 일주문

     

    ▲ 광주의 별미 오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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