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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궁 나들이(창경궁,창덕궁)후기/여행 2010. 11. 25. 17:48
『서울 은 600여년전 개국한 조선왕조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함께 민족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해 온 도시다.
모처럼 종묘와 4대궁궐(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 관광에 나섰는데 왠걸 10:30경 종묘앞에 도착하니 관람인파가 많아 입장하려면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기에 일정을 변경 오늘은 4대궁만 돌아보기로 하고 발길을 창경궁으로 돌렸다.창경궁은 종묘 우측 담장을 따라 돌아가면 도보 10분거리다.
정문격인 홍화문 앞에 이르니 내가 어릴적에 구경했던 창경원 자리임을 알수 있었다.』
창경궁,
*사적123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155(218,148㎡)
*관람 소요시간:1시간
*관람요금:\1,000원
*교통정보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8번출구 도보 10분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출구 도보15분
▲창경궁 전경(여타 궁궐들이 남향인데 반해 지세를 거스르지 않은 동향이다)
창경궁은 경복궁,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로 세종대왕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고자 1418년에 지은 수강궁이 그 전신인데 왕실가족이 늘어나면서 성종이 왕실의 웃어른인 세조 비 정희왕후,예종 비 안순왕후,덕종 비 소혜왕후 등 세 분의 대비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명전전,문정전,통명전을 짓고 창경궁이라 명명했다 한다.창경궁엔 아픈사연이 많다.임진왜란 때 전소된 적이 있고 이괄의 난이나 병자호란 때에도 화를 입었다.숙종 때의 인현왕후와 장희빈,영조 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이야기 등이 창경궁 뜰에 묻혀있다.
왕실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발전해온 궁궐이기에 내전이 외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것도 창경궁의 특색이다.
창경궁은 서쪽으로 창덕궁과 맞닿아 있고,남쪽으로는 낮은 언덕을 지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와 이어져 본래 한 영역을 이루었다.
*주요 문화재
홍화문(보물 제384호),명정문(보물 제385호),명정전(국보 제226호),통명전(보물 제818호),옥천교(보물 제386호)
아픈 역사가 깃든 궁
한때는 창경원(昌慶苑)이라고 했다. 동물원이 있었고 식물원이 있었다. 1911년 일제에 의해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격하됐고 오랜 시간 유원지 역할을 했다. 가장 처절하게 훼손된 궁궐이 경희궁이라면, 가장 처참하게 변화한 궁궐은 창경궁이었다. 다행히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이름도 다시 창경궁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창경궁이 지어진 지 꼭 500년 되던 해의 일이다.
창경궁은 1483년 성종이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서 창덕궁의 동쪽에 세웠다. 그 기초는 세종이 닦았는데 세종은 즉위하던 해에 고려 남경의 이궁 터인 지금의 창경궁에 태종을 위해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성종은 세조 비 정희왕후, 예종 비 안순왕후, 덕종 비 소혜왕후 등 세 명의 대비들을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면서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경궁에 있는 명정전과 문정전, 환경전, 경춘전 등 대부분의 전각이 이때 지어졌다.
창경궁은 자연스레 창덕궁과 이어졌으며 두 궁궐은 굳이 구분을 두지 않았다.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모든 전각이 소실됐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했다. 이후에는 창덕궁이 조선의 정궁 역할을 하면서 창경궁의 쓰임이 늘어났다. 보통 궁궐은 남쪽에 정문을 세우지만 창경궁은 동쪽에 정문이 있는 것도 창덕궁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배치인 듯하다. 그밖에도 기능과 용도 면에서 생활의 편의를 고려한 흔적이 많다. 하지만 1830년 환경전 화재로 내전들이 불탔고 1907년에는 일제에 의해 고종이 퇴위되고 순종의 거처를 창경궁으로 옮긴 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변질돼 일반에 공개하면서 궁궐의 권위가 추락했다.
가장 오랜 정전, 명정전(明政殿)
동쪽의 제일 바깥쪽에는 보물 제384호 홍화문(弘化門)이 있다.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보다 2칸 작은 3칸의 누각이지만 정감이 넘쳐난다. 실제로 영조와 정조는 홍화문 앞에서 일반 백성들과 만나기도 했다. 홍화문을 지나서는 옥천교(玉川橋)가 나오고 명정문(明政門)에 이른다. 홍화문의 행랑은 사각의 울타리를 이루며 한층 높은 지대에 있는 명정문과 만나고, 명정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명정전(明政殿)까지 이어진다. 창경궁은 홍화문과 명정문, 명정전이 계단식으로 지대를 높여가며 자리한다. 이는 창덕궁과 비슷한 형태다.
특히 국보 제226호 명정전은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에 비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조선의 궁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정전이다.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정전 뒤쪽으로는 왕이 정무를 보던 문정전(文政殿)이 있다. 문정전은 명정전과 직각을 이룬 채 자리하는데 창경궁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다. 일제강점기 때 헐렸던 것을 지난 1986년에 문정문, 동행각과 함께 복원했다. 가까이에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었던 숭문당(崇文堂)이 있다. 숭문당 바깥으로는 함인정(涵仁亭)과 경춘전(景春殿), 환경전(歡慶殿)이 'ㄷ'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경춘전은 성종 때 인수대비의 침전으로 쓰였으며, 경춘전과 떨어진 북쪽의 통명전(通明殿)과 양화당(養和堂)은 왕비의 침전으로 쓰였다.
궁궐의 북쪽에는 춘당지가 있다. 왕이 농정을 살피며 직접 농사를 짓던 장소다. 지금은 두 개의 연못이 있는데 뒤쪽의 작은 연못이 본래의 춘당지다. 큰 연못은 왕이 농사를 짓던 11개의 논이 있던 자리로 1909년 일제가 연못을 조성해 배를 띄우고 유원지를 만들었다. 그 너머로는 대온실이 있다. 같은 해에 지어진 국내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지었지만 창경원을 만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창경궁에는 내전 터, 동궁 터, 궐내각사 터 등 빈 터가 많다. 다시금 회복해야 할 우리네 궁궐이요, 자존심이다.▲통명전과 양화당
▲홍화문(보물 제384호)
조선시대에 왕이 백성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그러나 창경궁 앞에서는 달랐다.
영조는 균역법에 대한 찬,반여부를 백성들에게 직접 물었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백성에게 손수 쌀을 나눠주며 기쁨을 함께 했다.
▲명정문(보물 제 385호)
▲명정전(국보 제226호)
단층 지붕에 아담한 규모이지만 궁궐의 정전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통명전(보물 제818호),지붕의 용마루가 없는 왕과 왕비의 중심 침전이다.
▲양화당(대비의 침전)
▲경춘전(정조와 헌종이 태어난곳이며,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
▲집복헌
정조와 후궁 수빈 박씨 사이에서 순조가 이곳 집복헌에서 태어나 돌잔치,관례,책례등이
모두 이루어져 순조와 그 인연이 매우 깊은 곳이다.
창덕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122호
*위치: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563,516㎡)
*관람소요시간(일반):1시간 20분
*관람요금(일반):\3,000원
*교통정보
-3호선 안국역 3번출구 도보5분.
-5호선 종로3가역 7번출구 도보10분.
창덕궁은 1405년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별궁이다.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 방면에 있다 해서 ´동궐´이라고도 했다. 금천교가 세워지고(1411) 돈화문이 건립되는가 하면(1412) 조선 제9대 성종 때부터는 여러 임금들이 여기서 지내 본궁 역할을 하는 궁궐이 됐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은 불에 타는 비운을 맞이하는데,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이에 화가 난 백성들이 궁궐을 방화한 것이다. 그 후 1611년 광해군에 의해 다시 지어진 궁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인정전, 대조전, 선정전, 낙선재 등 많은 문화재가 곳곳에 있어 눈길을 끈다. 창덕궁은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수원 화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태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임금을 비롯한 왕족들이 휴식하던 곳이다. 후원은 북원(北苑), 금원(禁苑)이라고도 불렀으며 고종 이후 비원(秘苑)으로 불렀다. 낮은 야산과 골짜기의 원래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한 채 꼭 필요한 곳에만 사람의 손을 댄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정원이다. 부용정과 부용지, 주합루와 어수문, 영화당, 불로문, 애련정, 연경당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정자와 샘들이 곳곳에 있다. 특히 가을날 단풍 들 때와 낙엽질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 주요 문화재
인정전(국보 제225호), 돈화문(보물 제383호), 인정문(보물 제813호), 선정전(보물 제814호), 희정당(보물 제815호), 대조전(보물 제816호), 구선원전(보물 제817호),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창덕궁 인정전
세계가 보존하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은 서울에서 두 번째로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장 먼저 종묘가 선정됐고 이어 창덕궁이 등재됐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이자 세계가 함께 보존하고 지켜가는 문화재다.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은 진정성과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전제로 한 10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 이상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창덕궁은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창덕궁은 평지가 아닌 산자락에 지어진 궁궐로 전체 면적의 2/3가 북악산의 응봉산 자락에 있다. 산세를 적절히 활용한 궁궐인 셈이다. 창덕궁 후원의 가치가 각별한 이유도 이같은 자연의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건축과 조경의 특징이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에 의해 세워졌다.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조선 왕조의 이궁(離宮)이었다. 하지만 조선 왕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오랜 시간 법궁(法宮)의 역할을 한 궁궐이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과 창덕궁을 모두 잃었다. 그 후 경복궁은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방치됐고, 광해군 2년(1610)에 재건된 창덕궁은 약 270년간 조선의 법궁으로 쓰였다. 이웃한 창경궁과 특별한 경계를 두지 않고 사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선 궁궐이 그렇듯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됐다.
1917년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내전의 대부분이 손실되고 말았다. 이에 일제는 창덕궁을 복원한다는 미명 아래 경복궁의 전각을 헐어서 사용했다. 경복궁의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을 허물어 창덕궁의 희정당(熙政堂)과 대조전 등을 지었다. 창덕궁과 경복궁을 동시에 훼손시킨 것이다. 순종의 승하 이후에는 더욱 심하게 훼손됐다. 창덕궁은 1991년에 들어서야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다시금 입증했다.
옥류천에서 낙선재까지
창덕궁은 1960년 일반에 개방했다. 하지만 훼손이 심해지자 1977년부터 3년간 폐쇄했고 1979년부터 지금까지 안내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 여타의 궁궐과 달리 안내원의 지시를 따라야 하며, 자유로운 관람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 창덕궁 관람이다.
창덕궁은 크게 세 가지 관람 프로그램을 가진다. 첫 번째는 일반 관람이다.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을 중심으로 후원(後苑)의 입구에 해당하는 부용지(芙蓉池)까지 아우르는 기본적인 관람 코스다. 두 번째는 특별 관람이다. 특별 관람에는 다시 낙선재(樂善齋) 특별 관람과 옥류천(玉流川) 특별 관람으로 나뉜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쓰이던 공간이다. 검소한 헌종의 생활과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소박한 단청과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창살과 벽체 무늬가 두드러진다. 곁에 있는 석복헌(錫福軒)은 경빈의 처소로 궁궐 안에 후궁을 위해 건물을 지은 건 이례적이다. 낙선재에는 수강재(壽康齋)도 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덕혜옹주의 거처였다.
또 하나의 특별 관람인 옥류천 코스는 후원의 초입 부용지에서 후원의 백미 옥류천에 이르는 코스다. 후원은 창덕궁의 뒤편에 자리한 궁궐 정원으로 일제에 의해 비원(秘苑)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후원이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다. 북쪽에 있다 하여 북원(北苑)이라고도 한다. 후원의 아름다움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데에 있다. 생태계의 보존 상태가 좋고 연못과 정원 등에는 차경의 흔적이 두드러진다.
옥류천은 그 제일 안쪽에 자리한 계곡으로 인조 14년(1636)에 소요암을 깎아내고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기도 했다. 소요암에는 인조가 새긴 옥류천(玉流川) 세 글자가 또렷하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 등이 자리한다. 그 가운데 청의정은 볏짚으로 지붕을 인 정자로 주변에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지은 논이 있다.
특별 관람은 일반 관람과 코스가 다르며, 두 관람은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자유 관람으로 달랠 수 있다. 자유 관람은 매주 목요일 하루 동안 안내원의 통제 없이 궁궐 곳곳을 자유로이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하지만 일반 관람이나 특별 관람에 비해 입장료가 비싼 편이다. 물론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도 남음이 있다.▲금천교
▼▼▼▼낙선재 일원
▲창덕궁 후원의 가을단풍
*공간개요
1405년 태종이 지은 조선 왕조의 두 번째 궁궐로 임진왜란 때 전소하고 1610년 중건돼 가장 오랜 기간 조선 왕조의 법궁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훼손됐으나 1991년부터 복원 작업에 들어가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안내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일반 관람과 옥류천 특별 관람, 낙선재 특별 관람으로 나눠진다. 목요일 하루에 한해 안내원 없이 궁궐의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조선의 궁궐 가운데 후원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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