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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고장 영월 나들이후기/여행 2010. 10. 31. 14:26
때는 2010,10,29,10:00 오랫만에 이웃 영월 나들이에 나섰다.
몇일째 쌀쌀하던 날씨가 전형적인 가을로 돌아온듯 포근한 햇살과 청명한 하늘은 상쾌함을 더해준다.
오늘은 단종 의 유배지 청령포,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서강의 수호신 선돌,영월읍민들의쉼터이자 역사의현장 금강공원 순으로 돌아 보았다.
육지속의 작은섬,「청령포」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 로 지정되었다.
▲청령포전경
이곳은 조선 제6대왕 단종 이 숙부인 수양대군 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1457년(세조1년)에 노산군 으로 강봉되어 처음으로 유배되었던 곳이다.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 싸여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수 없는 유배지로 적합한 곳이다.
단종은 1457년6월부터 2달동안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여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 으로 옮겨서 유배생활을 계속하였다.
1726년(영조2년)에는 유배지 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 하는 금표비 를 세웠고 1763년(영조39년)9월에는 영조가 친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단종이 이곳에 계실때의 옛터이다-라는 비문을 써서 단종이 살던 집터에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2000년 4월에는 단종이 거처 하던곳에 단종어소를 복원 하였고 그 옆에 부속건물로 초가집을 건립하였다.
▲단종어소(2000,4월에 복원)
정면5칸,측면2칸반 규모의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의기와집
▲단종을 알현하는 신하
▲단종의 침실
▲부속건물(행랑채,시녀들의거소)
정면5칸,측면1칸반의 규모로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형식의 초가집
▲다듬이질 하고 있는 시녀
▲시녀의침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각
1763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의전면에 「단묘재본부시유지(단종이 이곳에 계실때의 옛터이다)」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 되어있다.
▲관음송(觀音松)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때로는 오열 하는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30m,둘레5m로 지상에서 두갈레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수령은 600년으로 추정.
▲금표비
앞면에는 청령포 금표라고 쓰여있고 뒷면에는 「동서로 300척,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흑이 쌓여 생기는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이라 쓰여있으며 측면에는 승정99년 이라고 음각 되어 있다.
▲망향탑
청령포 뒷산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 층암절벽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노산대(魯山臺)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후 해질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므로 노산대라 부르고 있다.
▲노산대에서 바라다본 서쪽의 층암절벽,중간지점에 망향탑이 보인다.
▲노산대에서 본 육육봉
▲▼청령포송림(천년의 숲 지정)
★ 단종은 누구인가?
「단종은 1441년 7월23일(세종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弘暐)이다
8세가 되던 1448년(세종30년)에 왕손에 책봉되었고 예문관제학 윤상(尹祥)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1450년2월(세종32년)에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되자 그해 7월20일 왕세손이었던 홍위는 10세의 나이로 왕세자(王世子)로 책봉 되었으며 1452년5월18일 문종이 승하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12세의 어린 나이로 제6대왕에 즉위 하였다.계유정난(癸酉靖難)이후1455년6월11일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上王)이 되었으며(재위기간1452~1455),박팽년,성삼문등이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 1457년(세조3년) 노산군으로 강봉된뒤1457년 윤 6월 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후인 윤6월 28일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그해 9월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가 다시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자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죽음을 강요당해 1457년 10월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 나이로 관풍헌에서 승하하였다.」
선암 마을의「한반도지형」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산 180번지,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긴긴 세월동안 서강이 빚어낸 절경이다.
삼면이 바다요,동고 서저의 우리나라 지형을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케한다.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
서강의 수호신 같은「선돌」
영월읍 방절리 서강변 층암절벽에 우뚝 선 높이 70m의 두갈레바위는 한폭의 동양화다.
마치 서강의 수호신 인양 오늘도 흔들림 없이 도도히 흐르는 서강을 굽어 보고있다
▲선돌
▲서강
▲전망대의 여인
선돌과 서강의 절경에 취한듯 미동도 하지 않는 저 여인은 무슨 상념에 젖었을까?
▲선돌광장과 단종이 울며 넘었다는 소나기재
영월읍민의 쉼터 금강공원,
영월읍 영흥리에 가면 동강을 끼고 있는 숲 좋은 작은 공원이 있다.
이곳에 산재한 문화유적 금강정,낙화암,민충사,월기경춘순절비 를 소개한다.
▲금강정
조선시대에 세운정자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계족산
금강정에서 바라본 동강 넘어 계족산 일대의 풍광이 아름답다.
▲낙화암
금강정 위쪽에 있는 동강의 층암절벽이다.
1457년10월24일 단종이 광풍헌에서 승하하자 단종 을 모시던 1궁노,10궁녀,그리고 시종들이 모두 이곳 절벽에서 투신 순사 하였다.이들이 투신할때의 모습이 마치 떨어지는 꽃잎 같다,하여 낙화암 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추락위험이 많아 출입을 금하는 철책이 쳐저있다
▲낙화암과 시종들의 순절을 알리는 비
▲민충사
단종 승하후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단종의 뒤를 따른 시녀와 시종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월기 ‘경춘’의 순절비
영월기생 경춘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투신 자살한 금강공원 의 동강변 벼랑위에 있다.
강원도 순찰사 손암 이공 이 비용을 내고 평창군수 남희로 가 비문을 짓고 영월부사 한지운 이 글씨를 써서 세운 열녀 경춘의 절개를 칭송한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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