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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河回)마을 탐방후기/여행 2011. 4. 29. 15:17
◆ 안동 하회마을(2010,7,31 유네스코 34차 회의에서 세계유산 등재)
▲하회마을
ish | Japanese 마을소개
낙동강이 큰 S자 모양으로 마을 주변을 휘돌아 간다. 그래서 하회(河回)라 했다. 오른편 안동시에서 흘러나와 왼 편으로 흘러간다.

하회마을을 찍은 항공사진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기와집)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을 주민 및 가옥
하회마을은 현재에도 주민이 살고 있는 자연부락이다. 한말까지 350여 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150여 호가 살아가고 있다. 마을 내에는 총127가옥이 있으며 43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7개 가옥 중 12개 가옥이 보물 및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풍수지리(風水地理)적 지형(地形)
태백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화산(花山)과 북애(北厓)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뻗어온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芙蓉臺)를 이루어 서로 만난 곳을 낙동강이 S자형으로 감싸 돌아가므로, 하회마을을「山太極 水太極 - 산과 물이 태극 모양」또는「蓮花浮水形-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 부른다. 풍수지리에 따른 마을의 주산(主山)을 화산(花山)이라 부르고, 부용대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화천(花川)이라 함은 연화(蓮花)에서 비롯한 이름이라 한다.
하회마을에는 지금도 강에 나룻배가 운행된다(관광용)
세거(世居)한 성씨(姓氏)들
하회마을의 풍산류씨의 세거 이전에는 허씨(許氏)와 안씨(安氏)가 먼저 세거하였다고 한다. 하회마을에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말이 전래되고 있으며,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구전(口傳) 및 강 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 허정승(許政丞)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으며, 숭정(崇禎)15년(1642)의 동원록(洞員錄)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 가구의 허씨와 안씨(安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풍산류씨(豊山柳氏)의 입향(入鄕)에 관한 전설(傳說)
풍산류씨(豊山柳氏)는 본래 풍산 상리에 살았으므로 본향(本鄕)이 풍산(豊山)이지만, 제7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공이 화산에 여러 번(가뭄, 홍수, 평상시) 올라가서 물의 흐름이나 산세며 기후조건 등을 몸소 관찰한 후에 이곳으로 터를 결정했다고 한다.
입향에 관하여「나눔」의 전설이 있는데, 집을 건축하려 하였으나 기둥이 3번이나 넘어져 크게 낭패를 당하던 중 꿈에 신령이 현몽하기를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을 하라는 계시를 받고 큰 고개 밖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및 짚신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참외를 심어 인근에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활인(活人)을 하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향 후 풍산류씨들은 계속된 후손들의 중앙관계에의 진출로 점점 성장하였으며,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의 조선중기에 배출한 명신들로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1999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2세가 하회마을을 다녀갔다.
하회마을의 전래 놀이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을 위한 놀이와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병존하였다.
하회별신굿탈놀이 ------ 굿을 겸한 탈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선유줄불놀이 ------ 시회(詩會)를 겸한 선유(船遊) 놀이 하회마을의 문호유산
종 목
분 류
명 칭
국보 제121호
민속 공예류
하회탈 및 병산탈
국보 제132호
원고본
징비록
보물 제160호
활자본류기타
서애류성룡 종가 문적11종 22점
보물 제460호
고문서류기타
서애류성룡 유물 3종 27점
보물 제306호
고가
양진당
보물 제414호
충효당
사적 제260호
서원(사적)
병산서원
중요민속자료 제84호
정사 / 가옥
화경당(북촌)
중요민속자료 제85호
원지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6호
빈연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7호
작천고택
중요민속자료 제88호
옥연정사
중요민속자료 제89호
겸암정사
중요민속자료 제90호
염행당(남촌)
중요민속자료 제91호
양오당(주일재)
중요민속자료 제177호
하동고택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민속마을
하회마을(1984)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연극
하회 별신굿탈놀이
경북도민속자료
서원(사적)
화천서원
▲하회마을 관리 사무소
▲하회장터
▲벗나무가 가지런한 낙동 강둑
▲부용대
▲마을풍경
▲견학중인 안동의 초딩생들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보호수. 해산중인 여인상이다.
▲고택 화경당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1572년 서애(西厓)류성룡(柳成龍)선생이 31세 때에 건립하여 후진을 양성한 서원으로서, 1614년 선생을 흠모한 사림(士林)들이 존덕사(尊德祠)를 세워 선생을 배향(配享)하였으며, 그 후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공을 배향하였다.
1863년「병산(屛山)」으로 사액(賜額)을 받았으며 복례문, 만대루, 동재, 서재, 입교당, 장판각, 존덕사, 전사청, 고직사 등이 있다.
병산서원의 전신(前身)은 고려말부터 이어져온 풍산류씨 가문의 서당인「풍악서당」을 선조5년(1572년)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諡號 文忠公 1542-1607년)선생이 31세 때에 후학의 양성을 위해 풍산에서 병산으로 자리로 옮겼다.
광해군6년(1614년)에 선생의 제자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공이 서애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유림(儒林)과 뜻을 모아 사당(祠堂)인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여 선생을 배향(配享)하면서 서원으로 위상이 바뀌게 되었으며, 1629년에 서애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 1582-1635) 공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병산서원(사적 제260호, 屛山書院)]
병산서원의 정문으로 정면 1칸의 대문이다. 복례란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라는 문구에서 따온 말이다.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이지만 이 문의 경우는 가운데 칸만 판문(板門)이고, 문의 좌우로 담장과 구분되는 벽채를 한 칸씩 두고 있다.
[입교당에서 바라본 만대루]
대루(晩對樓)의 만대(晩對)란 이름은 두보(杜甫)의 오언율시(五言律詩)인 제목:백제성루(白帝城樓)의 "…푸른 절벽은 오후에 늦게 대할만하니..."란 구절에서 명명되었다고 하며, 송나라 주희(朱喜)가 경영한 무이정사(武夷精舍)에도 만대정(晩對亭)이 있었다고도 한다.
[만대루(晩對樓)의 기둥과 계단]
마루를 받치고 있는 24개의 기둥들은 나무가 자란 그대로의 모양을 살려서 사용하여 인공(人工)이 가해진 맛을 줄였으며, 다듬지 않은 주춧돌 위에 세워져 있다.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로 이용되었던 건물로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입교당의 석축과 아궁이]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2단으로 석축을 쌓았으며, 별도의 기단을 두지 않고 높은 쪽은 건물의 기단으로, 낮은 쪽은 사람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궁이는 1.8m의 기단 양끝에 커다랗게 뚫려 있는데, 건물의 전면에 있는 것이 다른 건물에서는 찾기 힘들다.
[장판각(藏板閣)]
목판 및 유물을 보관하던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도리가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습기를 줄이기 위해 정면 3칸 모두 판문(板門)을 달았으며, 화마(火魔)를 막기 위해서 사진에서와 같이 다른 건물과 거리를 두어 독립적인 공간을 형성하였다.
[신문(神門)]
서원에 내3문(內三門)에 해당하며, 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였다. 정면 3칸으로, 솟을 3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사당의 출입문답게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있다.
[존덕사(尊德祠)]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위패와 수암(修巖) 류진(柳袗)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祠堂)이다. 가공(加工)된 화강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변형된 翼工形(익공형) 맞배지붕에 풍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단청이 되어있고, 전면 좌우에 계단을 두고 있다.
[정료대(庭燎臺)]
야간조명을 위한 석조물로서, 마당 좌우에 1쌍이 있는데, 사발 형태의 돌 위에 관솔(-소나무의 송진이 많이 엉긴 부분) 가지나 기름 등을 태워 불을 밝혔다. 팔각형의 기둥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팔괘(八卦)를 의미하고 있다.
[관세대(관洗臺)]
향(祭享)시 제관(祭官)이 손을 씻는 세수 대야를 올려놓는 석조물로서 네모난 형태의 역사다리 모양을 취하고 있다. 위가 넓은 것은 대야를 올려놓기 안정되게 하고. 아래가 위 보다 조금 비스듬히 들어간 것은 가까이 가서 씻기 수월하게 하기 위한 설계로 생각된다.
[병풍을 펼친듯한 병산]
서원 앞에는 노송들과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병풍(屛風)을 펼쳐놓은 듯 한 병산(屛山)이 있다.▲병산서원
▲부용대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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